익숙한 속담, 다른 시각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 속담은, 무언가 일이 많고 복잡하면 탈이 나기 쉽다는 의미로 통용되어 왔다. 가족이 많으면 걱정거리가 많고, 일이 복잡하면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식이다. 최근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에 대한 팩트체크 기사를 접하며, 익숙한 표현들도 새롭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가지 많은 나무’라는 표현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히 부정적인 측면만을 부각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과 복잡함 속의 질서를 탐색해보고자 한다.

가족이라는 나무

가장 흔하게 비유되는 대상은 바로 ‘가족’이다. 대가족이든, 핵가족이든, 혹은 더 넓은 의미의 공동체든, 구성원이 많다는 것은 곧 다양한 관계와 욕구, 그리고 관점의 충돌을 의미한다.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 간 분쟁이 심화된다는 뉴스처럼, 가까운 관계일수록 사소한 갈등이 증폭되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가지가 많다는 것은 더 많은 지지대가 있고, 더 넓은 그늘을 드리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군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기댈 수 있는 어깨가 여럿이라는 것은 분명 큰 힘이다. 서로 다른 재능과 경험을 가진 구성원들이 모여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 복잡함은 곧 다양성이며, 다양성은 혁신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조직과 시스템의 복잡성

개인의 삶을 넘어, 조직이나 시스템을 생각해보자. 규모가 커지고 다양한 부서와 업무가 얽히면 당연히 조정과 소통의 어려움이 따른다. ‘EZ’라는 단어가 주는 시사점처럼,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든 단순화하고 효율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복잡한 시스템은 때로는 하나의 문제가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을 막는 안전망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나의 가지가 부러져도 다른 가지들이 버텨주듯, 시스템의 특정 부분이 고장 나더라도 전체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지 않도록 설계될 수 있다. 오히려 복잡함 속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된 요소들이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에서 회복 탄력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바람 속에서 배우는 균형

결국 ‘가지 많은 나무’가 바람 잘 날 없는 이유는, 그만큼 역동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균형을 잡고 성장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바람은 가지를 흔들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나무는 더 단단해지고 뿌리를 깊게 내린다. 복잡함에서 오는 어려움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고, 타인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법을 배우며,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된다. 때로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흔들림을 견뎌내고, 때로는 바람의 방향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결국 ‘가지 많은 나무’의 바람은, 그 나무를 더욱 풍성하고 강하게 만드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